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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영의 금요칼럼]국회무용론(141) 나경원과 한동훈의 적반하장, 편견과 독선의 판사 나경원, 헌법적 권리를 내세워 휴대전화 비번을 까지 않은 한동훈

최자영 | 입력 : 2026/06/02 [21:20]

 

신종오 판사의 죽음을 자신의 편견과 독선 전개에 이용한 나경원
기본권 침해의 주체이면서 기본권 보호 대상인 사인(私人) 행세하는 검사 한동훈
객관적 잣대 없는 ‘양심’ 및 ‘고의성’ 여부는 법 영역에서 제거해야

내란 사범 혐의의 전 대통령 윤석열의 처 김건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등 혐의 사건 항소심에서, 1심보다 더 많은 형량을 때린 서울 고법 판사 신종오가 판결(4.28.) 이후 일주일여 만에 죽은(새벽 1시경) 시신으로, 서초동 법원 경내 건물 앞에서 발견(5.6.)되었다.

신종오 판사의 사망을 두고 국힘당 의원 나경원이, 한편으로 그를 ‘엘리트 판사’로 치켜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 “지금 공포 사회다. 판·검사들이 살아나겠는가. 정말 억장이 무너진다”, “내용을 파악해 봐야 되겠지만”, “지금 이 정권 들어서서 법왜곡죄(입법하고), 실체도 없는 지귀연 판사 룸살롱 접대, 의혹으로 그렇게 괴롭히고, 박상용 검사가 연루된 것으로, 쌍방울 대북송금 수사 과정에서 제기된 ‘연어, 술 파티’ 의혹(을 무리하게 제기하고)”, “(이재명에 대한 검찰의 부당한 조작기소를 조사하기 위해 민주당에서 추진하는) 조작기소 특위(의 부당성)” 등 발언을 했다.

나경원은 이 발언에서 서로 연관성 없는 개념들을 비약적으로 연결해서,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결론을 이끌어냈다. 지금으로서 영문을 알 수 없는 ‘엘리트 판사’의 죽음이, ① 법왜곡죄 입법은 부당하다, ② 지귀연 판사 룸살롱 접대 의혹은 실체가 없다, ③ 박상용 검사가 연루된 ‘연어, 술 파티’는 없었다, ④ 이재명에 대한 검찰의 조작기소 특검은 부당하다 등의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경원이 언급하는 이 4가지 결론을 신종오 판사의 죽음을 통해 도출하기는 어렵다. 각각의 주제는 그 이상의 광범한 외연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우선 신종오 판사 죽음의 배경이나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경원은 “내용을 파악해 봐야 되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그 단서는 마지못한 형식에 불과하다. 그 다음에 그가 이끌어내는 단정적 결론을 보면 그러하다.

나경원의 자의적 무논리는, ‘엘리트 판사’의 죽음에 의한 판·검사의 공포를 야기하는 원인 제공자가 현 정부라고 단정한 데서 극치를 이룬다. ‘엘리트 판사’에게 더 중한 형을 선고하도록 현 정부가 압력을 넣었다는 뜻인 게다. 그러나 그 반대편의 논리, 즉 세상에 회자하는바, 항소심에서 더 불리한 형을 선고받은 김건희 혹은 내란 세력 쪽에서 억한 심정으로 이 일에 개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나경원 자신이 유보한 대로, ‘내용을 파악’해 봐야 하는 것이다.

나경원의 말이 결과적으로 맞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문제는 ‘내용을 파악’하기도 전에, 나경원이 단정적 결론을 도출하고, 또 비약하여 평소 자기의 지론을 여기에 접합한 데 있다. 이 같은 태도는 나경원뿐 아니라, 현재 한국 판사들의 아집과 편견이 판결에 미치는 오판의 가능성을 증거하는 것이다. 전직 판사였던 나경원은 이 같은 아집, 독선, 비약으로 판결하는 판사의 전형이 된 셈이다.

인간의 속물 근성이 초래하는 이 같은 오판의 가능성 앞에, 판사의 양심에 따른 판결을 규정한 헌법조항(제103조)은 참으로 하릴없다. 편견 없는 완벽한 인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객관적 잣대를 설정할 수 없는 주관적 ‘양심’에 대한 허용 선언이란 판사가 자신의 편견에 따라 판결하도록 허용하는 허가장이 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주관적 잣대가 개재한다. 행위는 있었으나, 피의자가 의식하지 못했다던가, 악의가 없었다던가 하는 등, 판결의 준거로 적용되는 주관적 감정이 그것이다. 5.18 광주 학살을 두고 ‘탱크데이(탱크의 날)’로 이름하고 판촉에 나선 스타박스가 문제가 되었다. 정용진 회장은, 스타박스 사장을 해임하면서, 자신은 몰랐다고 선을 그었다.

여기서 문제는 정용진이 알았는가 여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구차한 변명이 아니라 실제로 몰랐다 해도, 그는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다소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책임은, 궁극적으로 기업의 대표가 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벌은, 개인의 인지 여부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발생한 사회적 파장의 크기에 따라 정해진다.

주관적 인식이 아니라 파생된 피해의 객관적 잣대에 따른 처벌의 기준은 특히 공적 분야에서 중요하다. 말도 많던 ‘법왜곡죄’가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다음, 위법한 (이재명 사건) 파기환송심에 연루된 조희대가 법왜곡죄 제1호로 피고발되었다.

그런데 법조계에서는, "대법관에게 법왜곡죄를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유죄 입증(이) 어려울 것이라고 설레발 쳤다. 법왜곡죄가 성립하려면 ‘의도적’으로 법령을 적용, 왜곡하거나 증거를 위·변조해야 하는 것이므로, 조희대에게 법왜곡죄를 적용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데일리안, 2026.3.13.)

또 계속된 면죄부·솜방망이 판결로 구설수에 오른 류경진(부장판사)은 그저께 내란 사범 혐의에 연루된 윤석열의 위증 여부를 가리는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계엄 위한 국무회의를 처음부터 계획“했다는 윤석열의 증언은 위증이 아니다", "(계획은) 주관적 평가이기 때문에 위증죄 대상도 안 된다"고 보았다. 이와 달리 앞서 다른 재판부들은, 한덕수가 건의해서 비로소 국무회의를 소집한 것, 계엄 선포 1시간 전까지도 의결정족수에 한참 미달했고, 회의록 작성 담당할 행안부 의정관조차 안 불렀던 사실을 확인했다. 참여연대는 판사 류경진의 무죄 취지 판결에 대해, ”도무지 납득 안 되는 중대한 판단 오류“로 규정했다.(시민언론 민들레, 2026.5.28.)

문제는 객관적으로 전혀 증명할 길 없는 인지 여부, 혹은 고의 여부를 판결의 잣대로 삼으면, 어떤 범죄도 처벌이 불가능해 진다는 점이다. 조희대의 주관적 ‘악의’ 여부나, 윤석열의 심증으로서의 ‘계획’ 여부는 법적 고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인은 객관적 행위 혹은 그 행위가 초래한 위법 혹은 사회적 피해의 크기에 따라 처벌받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윤석열의 수족으로 일하며, 검찰의 고발사주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받던 한동훈은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건의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결국 휴대전화는 한동훈에게로 반환되었다. 한동훈이 비밀번호를 까지 않고 버틴 이유 중 하나는 “헌법에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였다. 한동훈이 주워섬기는 이 같은 논리는 나경원의 ‘판·검사 공포사회’ 논리만큼 황당하다.

원래 기본권이란 국가 공권력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치를 뜻한다. 한동훈은 개인이 아니라 정부의 검찰권력을 행사하던 위치에 있었으므로, 기본권을 보호받을 처지가 아니라 오히려 그 기본권을 침해하는 입장에 있었다. 권력 행사자였던 그가, 권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헌법 ‘기본권’ 보호의 대상인 것처럼 내숭떠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것이다. 검찰 권력을 행사하던 한동훈이 도리어 스스로 피해자인 양 흉내(코스프레) 내는 모습을 보노라면, 이후 저마다 공적 지위에 따른 공인으로서의 책임은 지지 않고, 개인의 권리 찾기에만 연연할 공인들이 양산될 전망이다.

지난해(2025) 4.4일 윤석열 탄핵을 주도했던 문형배(전 헌법재판소 소장 대리, 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가 올해 대전 한국과학기술원 본원에서 열린 학술대회(5.30.)에서, “인공지능은 법관의 양심을 생성할 수 있는가?”의 주제로 강연했다.

문형배는 한편으로, 양심에 따른 판결의 불완전성을 인정한다. 그는, “법관의 양심은 판결의 중요한 잣대다. 대한민국 헌법(제103조)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양심이란 “상황과 의식의 상호작용에서 생성되는 것인데 상황이야 수시로 변화하는 것이며 의식은 주체마다 개별적으로 형성되는 것”, “법관의 ‘양심’도 시대와 상황과 판사 개인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양심’ 판결의 불완전성에 대해 두 가지 전망을 제시한다. 첫째, “법관이 심판하고자 할 때 결론이 양심에 따른 심판인지 성찰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법관에게 반증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 둘째, ‘양심적 법관’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 인문학적 소양, 헌법·시민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문형배식의 해법으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인문학적 소양, 헌법·시민교육을 가지도록 법관을 종용해야 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법관의 자기합리화적 반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같은 소양을 갖지 않은 판사에게서라도 그 판결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문학적 소양은커녕, 저마다 편견과 독선으로 휘둘리는 와중에, 또 간간이 들어오는 뇌물과 겁박의 유혹과 회유를 떨쳐버리라는 것은 참으로 요원한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이다. 신종오 판사의 불가해한 죽음에 대해 나경원이 아전인수로 해석하고, 또 한동훈 같이, 공권력 행사의 주체로서 자칫 기본권 침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이가, 오히려 기본권에 의한 보호를 요구하는 무책임한 검사가 있는 한, 더더욱 그러하다.

‘헌법 제 103’조‘ 양심에 따른 판결 조항을 그대로 두고 비현실적 희망 고문 할 것이 아니라, ’양심‘ 조항을 아예 파내버려야 한다. 독일에서는 ’양심‘ 조항을 두지 않고, 그 대신 오로지 ‘법률(Gesetz)’, 혹은 ‘법률(Gesetz)과 법(Recht)’에만 따르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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